김대중은 평소 자신에게 다섯 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다고 말해 왔다.
첫째, 6·25 전쟁 때 공산군에 체포됐는데 감옥을 탈출해서 살았단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 말고는 아무도 증언하거나 그런 걸 봤다는 사람이 없다.
둘째, 71년 5월 총선 유세 중 DJ의 승용차가 빗길에 대형트럭에 받혔다.
DJ는 사고를 가장한 정권의 살인 음모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트럭 운전사는 자신은 정권과 관련이 없으며 단순한 빗길 사고였다고 말해 왔으며 무엇보다 DJ 열렬한 지지자인 허경만 전 전남지사가 당시 검사였는데 사건을 음모가 아니라 과실로 처리했다. 그 이후 그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말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73년 8월의 납치 사건이다. 72년 10월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했고 일본에 있던 DJ는 망명했다.
이후락의 정보부는 도쿄의 호텔에서 DJ를 납치했고 공작선에 태워 서울로 끌고 왔다.
세번째 이야기인 즉슨 선원들이 나의 손과 발에 무거운 걸 매달았다며 자신이 수장(水葬)될 뻔했다는 이야기다. 네번째는 호텔방에서 대형 가방 등이 발견된 것을 놓고 김대중이 나를 토막 내려 했다고 주장한 데서 나온 이야기다.
모든 게 그의 주장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부가 토막을 내거나 수장하려 했는지 김대중 이외에 증언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 역시 아무 것도 없다. 당시 정황을 봐서 정보부는 그저 DJ에게 조금 겁을 줘서 서울에 데려다 놓으려 했을 가능성이 오히려 훨씬 크다.
다섯 번째는 80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벌한 5공 초기라 해도 권력이 국내외 압력을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할 거라 믿은 이는 많지 않았다.
이게 그가 죽을 뻔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의 진실이다.
누구나 일생에 죽을 고비 한 두번은 넘기고 산다.
오히려 정치인 중에서는 YS가 초산테러를 당한 것이나 23일 단식을 한 것이 모두가 보았고 증명하는 짤 없이 죽을 고비였다고 봐야 한다. YS가 보름달빵을 먹으며 단식했다고 킥킥거리는 DJ 광신도들은 김대중이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고 악을 쓸 자격조차 없는 버러지들이다.
너무 울궈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약무호남시무국가란 이순신 장군의 말씀조차 전라도 덕분에 국가가 있단 말이라고 나불대고 자신은 지역감정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김대중의 자기변명, 뻥튀기, 자화자찬, 책임회피의 인격은 세상이 아는 바이다.
첫째, 6·25 전쟁 때 공산군에 체포됐는데 감옥을 탈출해서 살았단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 말고는 아무도 증언하거나 그런 걸 봤다는 사람이 없다.
둘째, 71년 5월 총선 유세 중 DJ의 승용차가 빗길에 대형트럭에 받혔다.
DJ는 사고를 가장한 정권의 살인 음모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트럭 운전사는 자신은 정권과 관련이 없으며 단순한 빗길 사고였다고 말해 왔으며 무엇보다 DJ 열렬한 지지자인 허경만 전 전남지사가 당시 검사였는데 사건을 음모가 아니라 과실로 처리했다. 그 이후 그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말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73년 8월의 납치 사건이다. 72년 10월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했고 일본에 있던 DJ는 망명했다.
이후락의 정보부는 도쿄의 호텔에서 DJ를 납치했고 공작선에 태워 서울로 끌고 왔다.
세번째 이야기인 즉슨 선원들이 나의 손과 발에 무거운 걸 매달았다며 자신이 수장(水葬)될 뻔했다는 이야기다. 네번째는 호텔방에서 대형 가방 등이 발견된 것을 놓고 김대중이 나를 토막 내려 했다고 주장한 데서 나온 이야기다.
모든 게 그의 주장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부가 토막을 내거나 수장하려 했는지 김대중 이외에 증언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 역시 아무 것도 없다. 당시 정황을 봐서 정보부는 그저 DJ에게 조금 겁을 줘서 서울에 데려다 놓으려 했을 가능성이 오히려 훨씬 크다.
다섯 번째는 80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벌한 5공 초기라 해도 권력이 국내외 압력을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할 거라 믿은 이는 많지 않았다.
이게 그가 죽을 뻔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의 진실이다.
누구나 일생에 죽을 고비 한 두번은 넘기고 산다.
오히려 정치인 중에서는 YS가 초산테러를 당한 것이나 23일 단식을 한 것이 모두가 보았고 증명하는 짤 없이 죽을 고비였다고 봐야 한다. YS가 보름달빵을 먹으며 단식했다고 킥킥거리는 DJ 광신도들은 김대중이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고 악을 쓸 자격조차 없는 버러지들이다.
너무 울궈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약무호남시무국가란 이순신 장군의 말씀조차 전라도 덕분에 국가가 있단 말이라고 나불대고 자신은 지역감정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김대중의 자기변명, 뻥튀기, 자화자찬, 책임회피의 인격은 세상이 아는 바이다.
그는 죽기 전 2009년 6월 2일의 친필일기에서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라고 쓰고 있다.
일기를 도대체 누가 저 모양으로 쓸까.
"허벅지 관절 다친 곳이 불편해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정도로 쓰는 것이 통상적인 일기이지 무슨 박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운운하며 불확실한 사실을 자기 멋대로 과장해서 국민들에게 알리려 기를 쓰고 있다.
일부 국민들에게 광적인 지지를 받는 자가 죽기 직전에 쓴 일기 한 줄 마저 자신과의 대화가 아닌 국민들이 읽을 것을 예상한 선전문구에 불과하다는 것,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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